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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기다려 달랬는데도 혼자 자고... 도경수 뿡이다, 뿡,”

 

 

 

 

신발을 벗으며 불 꺼진 집안을 보던 찬열이 볼을 부풀렸다. 그리곤 정장 마이를 비롯해 셔츠와 바지를 허물 벗듯 소파에 올려둔 후 그 위에서 나뒹굴던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두운 탓에, 앉은뱅이 책상에 정강이를 부딪친 찬열이 벽을 더듬으며 거실 불을 켜고 까치발을 했다. 삐져서 부풀어 있던 볼은 어느새 꺼지고, 대신 광대가 방긋 올라가 있었다. 안방 문을 조금 열고 고개만 빼꼼. 저와 함께 불빛도 방안으로 빼꼼. 찬열이 여전히 까치발로 걸어와 침대 머리맡 바닥에 앉았다. 몇 번 눈을 깜빡인 찬열이 헤헤- 하고 실없이 웃었다. 제 눈앞에서 색색거리며 자고 있는 경수 때문에.

 

사실 찬열이 오늘 경수에게 좀 기다려 달라 말한 건 반지 때문이었다. 프러포즈까지 한데다가 곧 결혼까지 할 사인데 반지 하나 없는 건 너무하니까. 그리고 틀어진 제 계획에 대해 사과 겸 변명이나 하려고 감동적인 말도 준비해왔는데 말이다. 찬열은 반지와 함께 경수에게 프러포즈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망할 놈의 회사가 야근이라는 명목 하에 저를 놓아주지 않아 반지를 찾으러 가지도 못하고 무작정 프러포즈부터 해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급했다. 경수가 저를 좋아하는 것도, 제가 경수를 좋아하는 것도 다 아는데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것 마냥 불안했던 것이다. 예뻐 죽겠는 도경수를 누가 채갈 새라 안절부절 못한 것도 있었고.

 

급하고 불안한 마음 탓에 프러포즈는 엉망이었다. 준비했던 멘트는 다 꼬이고, 얼굴이 빨개진 것은 물론이고 무작정 경수에게 입 맞춘 것까지. 하지만 그래도 경수는 웃었다. 찬열과 똑같이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곤 환하게. 볼에 뽀뽀도 해주고 말이다. 마치 첫 데이트 때처럼 서로 쑥스러워 얼굴을 붉히던 그때가 떠올라 찬열이 베시시 웃었다.

 

색색거리며 꿈나라에 가있는 경수에게 얼굴을 가까이 한 찬열이 침대에 제 턱을 괴었다. 그러다 손을 뻗어 살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금세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한참을 그렇게 경수의 얼굴만 보던 찬열이 그제야 제 본 목적이 생각난 것인지 아! 하고 소리를 죽여 입을 열었다가 들고 들어온 작고 네모난 상자를 열었다. 상자를 열자 나온 것은 은색의 반지. 내가 이 반지 찾으러 가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넌 모를걸. 눈물 젖은 반지가 따로 없다며 속으로 흐느끼던 찬열이 조심스레 그 반지를 빼냈다. 그리곤 이불 위에 있는 경수의 손을 잡고 끼워주었다. 왼쪽 네 번째 손가락. 경수의 손가락에 쏙 들어가는 반지에 만족스런 웃음을 지은 찬열이 제 왼손을 포갰다.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참 좋았다.

 

 

 

“이제 너 진짜 나한테 코 꿰인 거야, 도경수. 내가 막 집착도 할 거고, 너한테 전화도 자주 많이 할 거고, 주말에 장도 같이 보러 갈 거고, 아침에 일어나서 네 얼굴 보이면 꽉 안아줄 거야.”

“......”

“앞으론 더 잘할게.”

“......”

“사랑해, ...여보야.”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던 찬열이 마지막 말을 하곤 제 몸을 배배 꼬았다. 손발이 오글거리면서도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게 참을 수가 없는 느낌이었다. 자고 있는 경수를 앞에 두고 있어도 미리 준비했던 근사한 말을 하는 것을 실패했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경수의 옆에 제가 있고, 제 옆에 경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좋았다.

 

그냥 네가 너무 좋아 경수야. 그냥 좋은 게 제일 좋은 거래. 그냥 너무 너무 너무! 네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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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네가 찍어달라면서어어~!!!”

“그래 붙어봐라 좀.”

 

 

 

예식장에서도 어김없이 종대의 찡찡거림과 백현의 나무람이 들려왔다. 왜냐하면 오늘을 빠짐없이 동영상에 담아달라는 찬열의 요구를 자신들은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들이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굴어서. 너네 오늘만 보고 안 볼 사이냐? 하루살이야?? 캠코더를 들고 있는 백현이 방방거렸다. 그리고 옆에선 종대가 또다시 찡찡. 나 배고프다고오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목소리와 카메라를 흔들고 있는 모든 것들이 동영상에 담기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하는 것인지... 어쨌든, 두 사람의 재촉 아닌 재촉에 찬열이 성큼성큼 경수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흥미롭게 찍고 있는 백현이 찬열의 움직임을 따라 경수의 앞에서 멈추었다. 찬열이 조심스레 경수의 턱을 잡았고, 서서히 다가갔다. 자연스레 경수의 눈이 감기고, 입술끼리 닿기도 전에 입을 벌리고...?

 

 

 

“이야 이 커플 완전 성인용이네.”

“맞아. 입부터 벌리는 것 봐.”

 

 

 

역시 백현과 종대는 자신들의 목소리는 담기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곤 방통위에서 나왔다며 손으로 렌즈 앞을 불쑥. 너네 둘 너무 십구금스러워서 이거 방송 못해.

 

 

 

“맞아 좀 순수한 버전으로 해봐. 그건 나중에 밤에 하구.”

 

 

 

어떻게든 둘을 놀려먹겠단 심산인지 백현과 종대의 쿵짝이 딱 맞아떨어졌다. 물론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 지금은 더. 둘의 놀림에 경수가 세모눈을 하고 흘겨봤지만 지금 둘에겐 무서울 게 없었다. 제3자가 봤을 때, 백현이 앞서 말한 하루살이는 백현과 종대를 가리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어쨌든 일단은 이 둘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찬열은 경수의 눈치만 살폈고, 백현과 종대는 흥미진진했으며, 경수는 입을 삐죽거리다가... 찬열의 목에 제 팔을 두르고 그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댔다. 깝죽이 둘의 요구대로 순수하게. 지그시 눈을 감고 말랑한 입술끼리 맞대고 있다가, 이제 됐냐고 할 심산으로 입술을 떼었는데,

 

 

 

“아 박찬열 때문에 또 십구금이야.”

 

 

 

정말 아쉽다는 듯 탄식이 들려왔다. 경수는 그저 눈을 깜빡였다. 자신은 분명 얼굴을 뗐는데 왜 찬열이 제 눈앞에 이리 가까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무엇. 그 어떤 때보다 찬열이 집중하는 게 지금이라는 것을 아는 경수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하여튼, 박찬열.

 

결국 순수버전을 얻는 것은 실패로 돌아가서 백현이 호들갑을 떨며 렌즈 앞으로 제 손을 들이댔다. 손 탓에 어두웠다가, 입 맞춘 두 사람을 비췄다가를 반복하던 화면이 끝내 완전히 어두워졌다. 화면이 어두워지기 전, 입술을 맞댄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행복해보였다. 찬열이나 경수 할 것 없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 귀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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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조명, 옆을 지나가는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사람들, 유달리 더 까매 보이는 하늘. 그 모든 것들을 눈에 담는 경수의 얼굴이 밝았다. 그런 경수를 보는 찬열의 얼굴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고.

 

 

현재 둘은 뉴욕의 밤거릴 걷고 있었다. 연애 시절부터 경수가 그렇게나 입에 달고 살던 뉴욕으로의 배낭여행. 찬열이 결혼 전 신혼여행으론 어디에 가고 싶냐 물을 때마다 경수의 대답은 같았다. 뉴욕. 뭔 신혼여행을 뉴욕으로 가냐는 주위의 구박에도 경수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시종일관 뉴욕. 그것도 배낭여행. 대나무 같은 경수의 뉴욕 의지에 찬열은 결국 백기를 들었더랜다. 까짓 거, 사랑하는 도경수가 뉴욕에 배낭여행을 그렇게도 가고 싶다는데 남편(?)이 그거 하나 못 들어줄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둘은 식이 끝나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 미리 예약해놓은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떠났다. 하지만 도착했을 땐 새벽이었다. 동이 틀 쯤 도착한 탓에 갈 곳도 없고, 결혼식 준비로 인해 많이 지쳐있었기에 잠을 잘 수 있는 곳에 들어가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눈을 떴다. 몇 시? 7시. 밤 7시.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고 열두 시간 정도를 내리 잤다는 것에 충격을 먹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적을 깬 경수는 말했다. 배고파. 머리는 까치집을 해선 중얼거리는 경수가 마냥 귀여워, 찬열은 그런 경수를 냅다 안고 다시 누워버렸다. 배고픔과 갑갑함에 발버둥도 쳤지만 누가 그랬던가. 잠은 잘수록 더 오는 것이라고. 푹신한 침대와 찬열의 품에 결국 경수는 다시 꿈나라로 향했다. 찬열 역시. 잠귀신이라도 붙은 듯한 커플이 눈을 떴을 땐 두 시간이 더 지난 때였다. 축축 처지는 몸 때문에 일어나기가 힘들었으나 배고픔엔 장사가 없는지 간단한 짐만 챙겨 숙소를 나섰다. 경수는 제 배낭을, 찬열은 기타를.

 

 

밤거리는 한국이나 뉴욕이나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경수는 뭐가 그리도 신기한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찬열은 뉴욕 대신 경수를 더 쳐다보기 바빴고 말이다.

 

 

 

 

“와 진짜 너무 예뻐... 불빛 반짝거리는 것 좀 봐, 찬열아.”

“응 진짜 예쁘다.”

 

 

 

우와, 우와- 하며 감탄사만 내뱉던 경수가 별안간 찬열을 돌아보았다. 눈이 딱, 마주쳤다.

 

 

 

“너 제대로 보고 있는 거 맞지?”

“응. 그으럼.”

 

 

 

고개를 갸웃한 경수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 작게 고개 젓곤 찬열의 손을 잡고 앞서 걸었다. 이러나 저러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날 줄 모르던 찬열 역시 걸음을 빨리해 경수와 발을 맞췄다.

 

잘 보고 있지 당연히. 예쁜 내 거 잘 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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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우리 경수 앞치마까지 매고 뭐 하고 있어?

“뭐야. 아침부터 어디 갔다 온 거야.”

“기타 수리 맡기러. 형이 아침에만 시간이 된다고 하셔서 일찍 다녀왔지.”

“말이라도 해주고 가지...”

“우쭈쭈 우리 경수, 일어났는데 여보야 없어서 서운했쪄요~?”

 

 

 

ㅇ,여보야는 무슨 여보야야!! 찬열의 말에 얼굴까지 붉히며 버럭 소리 지른 경수가 휙 몸을 돌렸다. 귀까지 발개져서는 씩씩거리며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노란색 앞치마, 그것도 앙증맞게 리본까지 잘 매여 있는 뒷모습에 찬열이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아... 도경수 정말 아침부터...

 

 

 

“여보야.”

“......”

“자기야.”

“......”

“경수야.”

“......”

“경수야.”

“...왜에.”

 

 

 

눈을 도륵 굴리며 고개를 돌려 찬열을 본 경수가 입을 삐죽였다. 쑥스러워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 정말 나 심장 터져 죽으면 어떡하지? 실없이 웃다가 진지하게 말하는 찬열을 잠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 경수가 짧게 숨을 내쉬고 찬열에게 다가가 팔을 벌렸다. 안아줘.

 

 

 

“일어나서 모닝 허그 못했잖아.”

“여보야 이제 모닝 허그가 키스로 변할 때가 된 것 같지 않아?”

 

 

 

한껏 능글거린 찬열이 경수의 허리를 잡고 당겼다. 순간 당황한 경수가 찬열과 저의 사이에 팔을 끼워 넣어 찬열의 가슴을 밀어도 봤지만 역부족인 건 당연한 것이었고.

 

 

 

“안 밀리니까 힘 빼지 말고 좀 와봐.”

“아 뭐어어...”

 

 

 

가까워진 얼굴에 경수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도톰한 입술이 톡 튀어나와선 달싹인다. 멍하니 그 입술만 보던 찬열이 허리에 감았던 손을 올려 경수의 얼굴을 잡았다. 나 어떡하지.

 

 

 

“모닝 키스로도 부족할 것 같은데.”

“야 너...! 새벽까지 나 괴롭혔잖아. 안 돼.”

“응? 내가 뭐 다른 거 한다고 했어? 우리 경수 뭘 상상한 걸까~”

 

 

 

저 혼자 얼굴을 붉히며 안 된다 말하는 경수의 모습에 찬열이 웃음을 터뜨렸다. 으이구-

 

 

 

“그럼 오늘부터 모닝 뽀뽀 하는 거지? 모닝 허그도 같이 하는 거야.”

“알았어...”

“그래 이러다 모닝 키스 하는 거고 모닝 ㅅ,”

“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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